Software Engineering

40대-50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한국에서 갈 곳이 없는가?

habana4 2025. 3. 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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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업의 지인으로부터 인력 추천 요청을 받았습니다. 마침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는데요, 40대 중후반의 후배로, 업계 경력만도 20년에 가까우며, 실무 감각과 기술 리더십을 모두 갖춘 엔지니어였습니다.

 

그동안 함께 일한 경험이 있어서 그의 실력과 인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정도 인재면 어디서든 환영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신 있게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그 후배의 나이를 확인한 회사 측에서 조심스럽게 난색을 표했습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조직과의 조화”, “팀 내 연령 구조” 같은 말을 돌려 하는 걸 듣고 나니, 결국 핵심은 ‘나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은 결국 ‘없던 일’이 되었고, 저 역시 후배에게 “이번 건 안 됐어”라는 말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제가 느낀 무거움과 미안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나이 많은 개발자를 이렇게 꺼려할까?” 실력도 있고, 경험도 풍부한 사람이 단지 나이 많다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현실. 그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그래서, 최근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관련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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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보다 나이가 먼저 보이는 한국 업계의 현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그 어떤 분야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는 약 2,870만 명에 달하며, 이는 2020년 대비 320만 명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미국 내에서는 약 430만 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활동 중이고, 유럽은 약 550만 명, 아시아 전체로는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개발자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연령대를 지나면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현실은 모순적입니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연령별 구성입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중 약 48.42%가 25세에서 34세 사이입니다. 반면, 35~44세는 21.71%, 45세 이상은 그보다 훨씬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이보다 더 젊은 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국내 스타트업이나 테크기업의 구성원 평균 연령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며, 이 안에 40대 이상 엔지니어가 존재하기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는 단지 조직의 연령 구조 문제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는 여전히 ‘연공서열’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젊고 빠른 인재’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나이 많은 개발자는 실무보다는 관리직으로 가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가 존재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조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외국은 다른가? — 시니어 엔지니어가 중심이 되는 구조

이와는 달리, 미국이나 유럽 등 소프트웨어 선진국들은 시니어 개발자의 역량을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평균 연령은 약 40세이며, Stack Overflow의 2023년 개발자 조사에 따르면 미국 개발자의 평균 코딩 경험은 15.8년입니다. 호주는 16.9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영국도 16.1년으로 그에 못지않습니다. 이는 경력과 실력이 쌓인 시니어 개발자들이 여전히 실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더불어, 글로벌 기업들은 기술직과 관리직의 경로를 분리해서 설계하고 있습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회사에서는 ‘Principal Engineer’, ‘Technical Fellow’, ‘Distinguished Engineer’ 등의 직함을 부여하여 기술적 전문성만으로도 임원급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코딩을 계속하고 싶은 개발자’가 끝까지 실무에 머물며, 조직 내에서 기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나이’는 오히려 강점이 됩니다.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다양한 리스크를 감지하며, 조직 내 후배 엔지니어를 멘토링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단기간에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시니어 개발자는 단지 개발 속도가 빠른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정확도’가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효율적인 해결책을 알고 있으며, 팀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후배의 일 == 나의 일

이번에 제가 추천했던 후배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빠르게 일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정확하고 신중한 엔지니어였습니다. 시스템 구조를 보는 눈이 탁월했고, 작은 디버깅 작업 하나에도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원인을 추적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무엇보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나누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실무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 지식의 흐름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이 모든 장점을 묻어버렸습니다. 저는 그가 거절당한 사실을 알리고 나서도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기회가 있을 거야”, “더 좋은 데가 나타날 거야”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얼마나 공허했을지 저는 잘 압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말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저 또한 같은 이유로 외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질문

2024년 기준,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54%는 재택근무 시 더 높은 생산성을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단지 업무 장소의 자유를 넘어, ‘자율적인 환경’에서 더 나은 성과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이 많은 개발자에겐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실증적 데이터와는 반대되는 인식입니다.

 

또한, 오픈소스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개발자 중 84%는 정기적으로 프로젝트에 기여하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가 30대 중후반 이상의 경험 많은 개발자들입니다. GitHub는 매달 2억 개 이상의 커밋을 호스팅하고 있고, 그중 상당수는 베테랑 개발자들의 손에서 나옵니다. 이는 개발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기술적으로 활발하게 기여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

  • 왜 우리는 여전히 ‘나이가 많으면 실무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 왜 우리는 조직에 꼭 필요한 시니어 기술자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을까요?
  • 왜 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존중받는 시니어 개발자를, 우리 내부에서는 꺼리는 걸까요?

이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적어도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 기회를 갖는 환경, 나이가 많아도 존중받는 구조, 그리고 기술자로서 늙어갈 수 있는 산업,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점입니다.

 


마치며...

저는 지금도 그 후배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업계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 후배가 어디서든 당당하게 기술을 펼치며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추천할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그를 다시 추천할 것입니다.

 

또한 내가 속한 조직이 단지 나이 많다는 이유로 탈락하지 않는, 그런 조직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기 위해 조금 더 애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언젠가는, 시니어 개발자가 당당히 실무에 남아 일할 수 있는 생태계로 나아가길. 실력은 그대로인데, 숫자 하나로 기회를 잃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시니어 개발자들이,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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